새 계절이 시작되면 자연은 신록의 색으로 물든다. 봄기운이 스며들어 겨우내 앙상했던 산과 들이 서서히 초록으로 깨어난다. 그러나 최근에는 강물까지 초록으로 변하는 일이 잦다. 때 이른 녹조 현상 때문이다.
✽ 이 기사의 내용은 한국환경공단의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글. 천권필(중앙일보 기자)
새 계절이 시작되면 자연은 신록의 색으로 물든다. 봄기운이 스며들어 겨우내 앙상했던 산과 들이 서서히 초록으로 깨어난다. 그러나 최근에는 강물까지 초록으로 변하는 일이 잦다. 때 이른 녹조 현상 때문이다.
✽ 이 기사의 내용은 한국환경공단의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글. 천권필(중앙일보 기자)
녹조란 강이나 호수에 남세균(남조류)이 과도하게 성장해 물의 색깔이 녹색으로 변하는 현상을 말한다. 마치 초록색 물감을 푼 것 같은 강을 두고 ‘녹조라떼’라는 말까지 나왔다. 남세균은 강과 호수에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미생물이지만 특정한 환경 조건이 맞물리면 빠르게 늘어난다. 특히 수온이 높고 햇빛이 충분하며 물속에 질소와 인 같은 영양염류가 많을 때 번성한다. 여기에 물의 흐름이 느리거나 정체되면 더욱 빠르게 증식한다. 이러한 조건이 동시에 갖춰진 강과 호수의 물은 짧은 시간 안에 변한다.
과거 녹조는 여름철에 발생하는 자연 현상이었다. 남세균이 20~30도의 고수온에서 왕성하게 성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온난화의 영향으로 녹조 번성 시기가 앞당겨지면서 이젠 봄철에도 녹조 현상이 빈번하게 나타난다.
이는 데이터로도 입증된다. 한 국내 연구팀이 2016년부터 2022년까지 4대강(낙동강·금강·영산강·한강)의 녹조 현상을 분석한 결과, 남세균 번성의 시작이 빠르면 4월 중순부터 나타나는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봄철 최저 기온이 빠르게 상승할수록 녹조 발생 시점 역시 앞당겨지는 경향이 나타났다. 미래는 더 암울하다. 온실가스를 감축하지 않는다면 남세균 번성이 시작되는 시점은 매년 최대 0.81일씩 앞당겨지리라 예측됐다.
기후변화로 봄철에 고온 현상이 잦아질수록 녹조 현상이 나타나는 시점이 일러진다는 뜻이다.
문제는 녹조가 단순히 물의 색을 바꾸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부 남세균은 마이크로시스틴과 같은 조류 독소를 만들어 낸다. 이 독소는 수질을 악화시키고 수생 생물의 생존을 위협한다. 최악의 경우 녹조가
발생한 강은 ‘죽음의 강’으로 변하기도 한다. 녹조가 심해지면 물속 산소 농도가 감소해 물고기 폐사 현상이 일어나고, 강과 호수 주변에서는 악취가 나기도 한다. 조류 독소를 흡수한 포유류는 간세포나 신경계에
치명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녹조로 오염된 물을 농업용수나 생활용수로 사용할 경우 우리의 식탁과 건강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마이크로시스틴에 오염된 물이나 음식을 섭취하면 구토나 복통, 설사와 같은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대한민국 국토의 4분의 1 크기인 미국 이리호에서는 2014년 수돗물에서 녹조로 인해 생성된 독소가 나와 인근 주민 50만 명이 수돗물을 쓰지 못하는 사태를 겪었다. 미국 정부는 녹조로 인한 경제적 피해가 연간
22억 달러(약 3조 657억 원)에 달한다고 추산했다. 수질 관리와 정수 처리비뿐 아니라 보건 예산 규모도 증가하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결국 녹조 문제는 특정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물과 연결된 우리의 일상
전체와 맞닿은 환경 문제다.
물속 산소 농도가 감소해 폐사한 물고기
하천은 식수와 농업용수를 공급하고 산업 활동에 필요한 물을 제공한다. 동시에 수많은 생물이 살아가는 생태계의 터전이기도 하다. 건강한 하천은 인간의 삶과 자연 생태계를 함께 유지하는
기반이 된다. 그러나 최근 하천 환경은 여러 요인으로 인해
녹조가 발생하기 쉬운 조건이 갖추어졌다.
육지의 다양한 오염원으로부터 영양염류가 강으로 유입되면서 조류 성장에 필요한 영양분이 증가하고, 물의 흐름이 정체된 결과 번식 속도도 빨라졌다. 이런 문제를 줄이기 위해서는 하천으로 유입되는 오염물질을 줄이고 물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회복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생활 하수와 농·축산업에서 발생하는 영양염류 관리를 강화하고, 하천의 수질을 지속적으로 신경 쓰는 정책적 노력도 중요하다.
봄철 녹조 발생을 예방하는 건 최우선 과제다. 녹조가 일러질수록 번성 기간이 길어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일부 하천에서는 녹조가 봄에 시작해 가을까지 이어지는 장기적인 현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번성 기간이
길어지면 수질 관리 부담은 커지고, 정수 처리 비용 역시 증가한다. 무엇보다 한 번 발생한 녹조는 단기간에 사라지지 않는 특성이 있기에 발생 조건을 줄이는 노력이 필수다.
동시에 물 환경에 대해 사회적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우리가 사용하는 물이 어디에서 오고 어떤 과정을 거쳐 우리의 삶과 연결되는지 이해하는 것이 환경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다. 봄은 자연이 다시 살아나는 계절이다.
산과 들이 초록으로 물드는 이 시기에 강까지 녹색으로 변하는 낯선 풍경은 또 다른 메시지를 던진다. 자연이 보내는 작은 신호를 얼마나 민감하게 읽어내느냐에 따라 미래의 환경이 달라진다. 강이 건강해야 우리의 삶도
건강하다. 신록의 계절에 시작되는 녹조가 때늦은 경고가 되지 않도록, 물 환경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