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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 라이프

문화 속 환경들여다보기
환경이라는 주제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아도 각 시대를 품고있는 영화나 소설 등 문화 콘텐츠의 이면을 살펴보면 당시 인류가 맞닥뜨린 환경 문제를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해볼 수 있다. 환경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전 지구적 화두임을 깨닫는 지금, 흥미진진한 이야기에 가려져 있던 과거의 위생·질병·오염 문제를 다시 한번 짚어볼 때다.
글. 김승희

수은 중독은 모자 장수들의 직업병?

소녀를 주인공으로 한 모험 이야기가 흔치 않던 1865년, 루이스 캐럴은 앨리스라는 한 소녀가 이상한 세상에 흘러 들어가 다양한 인물들을 만나며 전개되는 이야기를 다룬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발표해 근대 아동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에 이름을 올렸다. 일본 아사히신문의 환경생태 전문기자였던 이시 히로유키가 쓴 [세계 문학 속 지구 환경 이야기]에 따르면,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 중 '미친 모자 장수'(Mad Hatter)는 루이스 캐럴이 살던 시대의 열악한 산업 환경을 비추고 있어 흥미롭다.

수은 중독은 모자 장수들의 직업병?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는 미친 모자 장수가 등장한다

당시에는 이상한 말을 하거나 정신없는 행동을 하는 이에게 '모자 장수처럼 미쳤다'라는 말을 관용구처럼 썼고, 이는 오늘날까지 이어져 미치광이나 괴짜를 뜻하는 단어로 남았다. 실제 19세기 유럽에서는 모자를 만들어 파는 장인들 가운데 수전증 증세를 보이며 횡설수설하는 이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 이유는 당시 유행하던 모자에서 찾을 수 있다. 양모 섬유를 치밀하게 변화시켜 만든 펠트로 만든 모자가 큰 인기를 끄는 등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던 시절, 모자 장인들은 펠트 생산을 위해 수은을 사용했다. 수은의 독성을 알지 못했던 모자장인들은 맨손으로 수은을 만지거나 수은 증기에 장기간 노출된 환경에서 작업했고, 결국 수은 중독 증세를 보이다 비참한 말로를 맞고 말았다.

수은 중독 증후군은 일본에서도 큰 사회 문제로 떠올랐다. 1950년대 일본 구마모토현 미나마타시 주민들이 어패류를 먹고 집단적으로 이상 증세를 보였다. 문제가 된 것은 어패류에 축적된 메틸수은이었는데, 조사 결과 이 치명적인 화학물질은 당시 화학공장에서 공장폐수와 함께 바다로 방류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1968년 일본 정부는 수은 중독 증후군을 발생 지역의 이름을 따 '미나마타병'이라 명명하고 공해병으로 공식 인정했다.

유럽의 열악한 공중위생이 빚어낸 발명품, 향수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향수: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는 18세기 프랑스를 배경으로 한 장 바티스트 그르누이의 향기에 대한 집착과 살인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르누이는 섬세한 후각을 지녔지만 정작 그에게서는 어떤 체취도 느낄 수 없어 사람들은 그를 두려워했다.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는 사람이라니, 보통 청결하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며 당시 유럽에서라면 더욱이 불가능한일에 가까웠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유럽 대도시의 위생상태는 경악할 만했기 때문이다. 체계적인 공중위생 관리시스템이 없던 시절이었기에 길거리에는 쓰레기나 오물이 그대로 방치됐고 그로 인한 악취와 거듭되는 전염병은 사람들이 감당해야할 몫이었다. 높은 건물에서 떨어지는 오물을 피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파라솔의 기원이며 길거리의 쓰레기와 오물을 밟지 않기 위해 탄생한 것이 하이힐이라니, 당시의 거리 풍경이 얼마나 지저분했을지는 상상하고 싶지 않을 정도다.
향수
↑향수

그르누이는 버려진 생선더미 아래에서 발견된 사생아였다. 태어난 장소의 악취 때문일까. 그는 냄새에 민감했고 여성들에게서 나는 좋은 향을 탐냈다. 당시에는 씻는 것이 질병 감염을 유발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귀족들은 목욕대신 깨끗한 옷을 갈아입는 것으로 위생을 챙겼다. 그러다보니 몸에서 나는 악취를 덮기 위해 향수는 빼놓을 수 없는 필수품이 됐다. 향수의 기원은 종교 의식의 한 형태로 신과 인간의 교감의 매개체로 출발했지만, 이것이 하나의 산업으로 발전하기 시작한 시기는 17세기 프랑스의 루이 14세 때부터라고 한다.

미친 새들이 만들어낸 공포 저 너머의 환경오염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새들이 하늘을 가득 메운 장면은 공포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스릴러의 거장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영화 [새]는 이렇듯 내재된 공포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다. 평소 아무렇지 않게 여기던 새들이 인간을 공격하는 무서운 존재로 돌변하며 하늘을 배회하니 도망칠 데 없는 인간들은 머리를 감싸고 있는 힘을 다해 뛰는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영화 속 상황이 실제로 일어난다면 어떨까? 섬뜩하게도 히치콕은 이 영화의 모티브를 1961년 8월 18일자 캘리포니아 북부 몬터레이만 지역신문에 난 기사에서 얻었다고 전해진다. 당시 이 신문 기사에는 수천 마리의 미친 새들이 바닷가 인근에서 목격됐는데, 새들은 자신이 먹은 것들을 토해내며 이내 방향을 잃고 건물이며 바위로 곤두박질쳐 죽었다는 내용이 실려 있었다. 작품 속에서 죽음이나 불행한 사건을 예고할 때 종종 새를 등장시켰던 히치콕에게 이 기사는 꽤 흥미로운 사건이었을 듯하다.

히치콕 감독의 영화 '새'는 이상 기온이 빚어낸 괴이한 상황을 모티브로 했다.
↑히치콕 감독의 영화 '새'는 이상 기온이 빚어낸 괴이한 상황을 모티브로 했다.

새들을 미쳐 날뛰게 한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그 비밀은 50년이 지난 최근에서야 미국 루이지애나 스테이트 대학 해양 생물학 연구진에 의해 밝혀져 네이처 지오사이언스지에 실렸다. 연구진은 1961년 7~8월 사이 몬터레이만 지역에서 채집돼 스크립스 해양연구소에 보존돼 온 동물성 플랑크톤을 분석한 결과 독성인 도모산을 만들어내는 슈도-니치아 종으로, 당시 이 지역에서 머물던 철새들이 독성이 농축된 먹이를 먹고 광란을 일으킨것으로 추정했다. 도모산은 먹이사슬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농축돼 이를 먹은 새에 혼란과 방향상실, 가려움증, 발작, 심하면 죽음에 이르게 한다. 사람이 이런 독성조류를 먹은 조개 등을 먹으면 단기 기억상실을 일으킬 수 있다. 당시 이 지역은 유난히 따뜻한 날씨가 길게 이어져 독성을 지닌 플랑크톤의 번식을 도왔을 것으로 보인다. 해로운 화학물질을 바다에 몰래 버리지 않고도 기온 상승과 같은 적절한 조건만 갖춰지면 언제든 벌어질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 인간을 더욱 두렵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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