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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리포트

빗물의 경제적 가치, 돈으로 따지면 얼마나 될까?

쓰레기와의 전쟁

전국에는 한 해 평균 1307.7㎜의 비가 내린다. 국토를 빗물로 채우면 성인의 가슴 높이까지 찰 정도로 결코 적은 양이 아니다.
장마철에는 홍수로 인해 수 조원이 넘는 피해가 발생하기도 하지만 올해 초에는 전국이 극심한 가뭄을 겪었다. 강수의 계절별 양극화가
점차 심해지면서 벌어지는 현상이다. 물 부족 국가로 꼽히는 한국이 처한 아이러니한 현실이기도 하다. 이런 기후 특성 때문에
물 관리의 중요성은 점점 커지고 있다. 최근 들어 빗물의 가치가 주목받고 있는 이유다.

글. 중앙일보 천권필 기자

서울 관악구의 서울대 39동(공과대학) 건물에는 비밀 공간이 숨어 있다. 서울대 한무영 건설환경공학부 교수를 따라 건물 지하로 내려갔다. 체력단련장 옆에 있는 쪽문을 열자 10평 남짓한 작은 공간이 나타났다. 한 교수가 설계한 ‘빗물 탱크’다.
200t(톤) 용량의 탱크에는 며칠 전에 내린 비로 빗물이 가득 차 있었다. 한 컵 떠보니 빗물이라고 생각하기 힘들정도로 투명했다.
“건물 지붕에서 바로 받기 때문에 흙이 묻지 않아 깨끗하죠. 간단한 정수 과정을 거쳐 건물 전체의 변기용 물로 사용하고 있어요. 보통 변기는 한 번에 10L(리터)가량의 물을 쓰기 때문에 엄청난 양의 물을 아낄 수 있죠.”
빗물 박사. 수십 년 동안 꾸준히 빗물을 연구해 온 한 교수에게 붙은 별명이다. 실제로 서울대 곳곳에는 그가 만든 빗물 재활용 시설들이 설치돼 있다. 35동 옥상에 있는 ‘빗물 텃밭’도 그중 하나다. 한 교수는 빗물을 효과적으로 모을 수 있도록 가장자리를 높인 오목형 구조로 텃밭을 만들었다. 그는 “오목형 텃밭이 건물에서 유출되는 빗물을 줄여 홍수를 예방할 뿐 아니라, 옥상 표면의 온도까지 낮추기 때문에 여름 장마철에는 뛰어난 효과를 발휘한다”고 설명했다.

한 해 빗물, 6조 7,200억 원 가치

그렇다면, 빗물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면 얼마나 될까? 물은 종류에 따라 가격이 매겨져 있다. 댐에 저장된 용수는 현재 ㎥당 52.7원이다. 이를 적용하면 한 해 동안 내리는 빗물의 총량(1,276억㎥)은 약 6조 7,200억 원이다. 총 강수량의 27%를 차지하는 장맛비만 따져도 1조 8,000억 원이나 된다. 물론, 모든 빗물이 댐에 모였을 때 가능한 얘기다. 실제로 빗물의 대부분은 대기로 증발하거나 바다로 흘러가고, 25% 가량만이 댐이나 지하수를 통해 재활용된다.

기상청은 2009년에 수자원 확보 차원에서 빗물의 경제적 가치는 9,097억 원에 달하고, 장맛비는 약 2,470억 정도의 경제적 가치가 있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다양한 방법을 통해 버려지는 빗물을 모은다면 그만큼 빗물의 값어치를 높일 수 있다. 한 교수는 “도시화로 인해 빗물이 스며들지 않는 불투수면이 늘어나면서 버려지는 빗물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며 “와플처럼 서울 곳곳에 빗물을 받을 수 있는 시설을 만든다면 빗물의 가치를 높이고 홍수 예방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세먼지 없애고 열대야 늦추는 효과도

빗물의 가치는 이뿐만이 아니다. 최근 문제가 되는 미세먼지 해결에도 도움이 된다. 공기 중에 떠 있는 먼지와 분진, 중금속 등의 오염 물질을 제거해 미세먼지 농도를 낮추기 때문이다. 여름철에 내리는 비는 도시의 열섬 효과를 낮추는 데도 기여한다. 장마가 길어질수록 장마가 끝난 뒤에 시작되는 열대야를 늦추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실제로 기상청 국립기상연구소 연구팀은 ‘오랜 가뭄 뒤에 내린 비에 대한 긍정적 측면의 경제적 가치 연구’ 보고서에서 2009년 4월 20일부터 21일까지 이틀 동안 내린 비의 경제적 가치를 산출했다. 첫날에는 대부분의 지역에서 30㎜ 이상의 많은 비가, 둘째 날에는 강원 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3㎜ 이상의 적은 비가 내렸다. 연구팀의 분석 결과, 이틀 동안 내린 비는 총 2,900억 5,000만 원의 경제적 가치를 지닌 것으로 평가됐다. 구체적으로는 대기질 개선이 1,754억 원으로 가장 많았고, 가뭄 해소 1,086억 5,000만 원, 수자원 확보 58억 5,000만 원, 산불 감소 4억 8,000만 원 등이었다.

호주 항공사 일등석에선 빗물 생수 마신다

해외에서는 식수로서의 가치에 주목하고 있다. 한 교수는 해외에서 가져온 고급 생수병을 꺼냈다. 호주의 오염되지 않은 청정지역에서 빗물을 받아 만든 생수인데 음료수보다 비싼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고 한다. 한 교수는 “호주에서 생산하는 빗물 생수는 항공기 일등석이나 최고급 칵테일바에서 사용할 정도로 맛과 품질을 인정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수도 시설조차 마련되지 않은 낙후 지역에서는 빗물의 가치가 더 빛이 난다. 빗물받이 시설만 잘 갖춘다면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깨끗한 식수 확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 교수는 몇 년전부터 베트남에서 수도 시설이 없는 학교를 대상으로 빗물을 저장해 식수로 쓸 수 있는 시설을 설치하고 있다. 그는 “수돗물도 나오지 않다 보니 어쩔 수 없이 학교에 생수 값을 냈던 학부모들이 제일 좋아하더라”며 “전세계에 마실 물이 없는 사람이 15억 명이나 되는 만큼 식수로서 빗물의 가치를 계속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 이 기사의 내용은 한국환경공단의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