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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모두가 조금씩의 불편함을 감내하지 않고서는 해법도,
더 나아가 인류의 미래도 없다

플라스틱 쓰레기 홍수

신물질의 발견이나 신기술의 발명, 더 나아가서 과학과 기술의 발전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앞으로, 누적적으로
나아가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발견과 발명이 대중적으로 보편화하기까지 시간이 걸리는데다, 널리 적용되고 나서도 상당한 세월이
지나서 예상치 못했던 폐해나 부작용이 뒤늦게 드러나기도 한다. ‘기적의 살충제’로 각광받던 DDT, 석면, 납이 포함된 휘발유,
벤젠과 PCB(폴리염화비페닐) 등이 모두 그런 과정을 거쳤다. 가장 최근에는 경유차 엔진에서 뿜어져 나오는
배기가스와 플라스틱이 이 대열에 합류했다. 플라스틱도 마찬가지 경우이다.

글. 임항(한국환경공단 비상임이사)

전체 생활폐기물 발생량이 꾸준히 줄어들다가 근년 들어 다시 늘어나게 된 데는 1인가구의 증가와 음식배달업의 급성장에 따른 포장용 플라스틱의 급증세가 큰 몫을 하고 있다.

플라스틱은 종류도 다양하고, 재활용하기가 까다로운 탓에 선진국들에서도 그대로 버리거나 다른 나라에 수출하는 비중이 크다. 온갖 기술과 정책을 동원해도 그 비중을 크게 줄이지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플라스틱은 3R(reduce, reuse, recycle) 가운데 감량, 즉 줄이기가 가장 중요할 수밖에 없다. 나는 우리나라에서 플라스틱 사용량을 줄이기 위한 제안을 우선 한 가지만 제시하려고 한다. 플라스틱 감량부문에서 최근 대두된 것이 택배산업과 배달음식에 대한 규제와 남용 자제의 필요성이다. 우리나라에서 전체 생활폐기물 발생량이 꾸준히 줄어들다가 근년 들어 다시 늘어나게 된 데는 1인 가구의 증가와 음식 배달업의 급성장에 따른 포장용 플라스틱의 급증세가 큰 몫을 하고 있다. 즉 환경부 통계에 따르면 쓰레기 종량제와 분리배출이 시행된 1994년 하루 5만8000톤이던 생활쓰레기 발생량이 2013년에는 4만8,000톤까지 줄었다가 2017년에는 5만4,000톤으로 반등한 것이다. 배달음식과 택배 식재료용 포장재의 증가가 그만큼 위협적이라는 말이다.
실제로 최근 KBS가 보도한 환경부 집계에 따르면 1인당 쓰레기는 가구원이 적을수록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2013년의 경우 4인 가구에서 발생하는 쓰레기가 1인당 하루 평균 103g이었는데 비해 3인 가구에서는 135g, 2인 가구는 145g, 1인가구는 207g으로 가구원 수에 반비례하는 양상을 보였다. 식구가 적을수록 음식을 해 먹는 것이 비경제적이고, 낭비도 많으니 배달을 많이 시켜먹는 것이다. 그러나 설거지가 귀찮아서 외식하는 대신 배달음식을 이용하는 마당에 플라스틱 포장재를 씻어서까지 버리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택배산업이나 특히 음식배달업에 대한 1회용품 사용 규제나 제한은 효과를 내기도 어렵고, 현실적으로 시행하기도 힘들다. 근원적으로 우리의 소비행태가 변해야 한다. 음식을 사먹어야 할 경우 조금 불편하더라도 배달 대신 외식을 하고, 음식재료도 택배로 주문하기보다는 직접 방문해서 구입하는 게 바람직하다. 우리가 불편을 감수하지 않고서는 플라스틱 사용량을 줄일 수 없고, 미세플라스틱으로 인한 해양오염과 환경호르몬의 건강 위험도 피할길이 없다.
택배업이나 음식배달업은 저임금 근로자를 열악한 근로조건 하에서 일하도록 만드는, 이른바 '바닥을 향한 경쟁'의 대표적 업종이다. 또한 택배용 소형화물차와 음식배달 오토바이들은 대도시 주민들에게 미세먼지 피해를 가중시키는 큰 요인이다. 배송 및 배달 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과 교통사고의 위험에 늘 시달린다. 이런 사회 문제의 개선책 모색을 돕기 위해서도 배달서비스의 남용을 자제하고, 그런 방향으로 환경 및 시민단체들이 캠페인을 펼칠 필요가 있다. 우리 국민의 과반수는 소비자이자 동시에 노동자다. 대형마트에서 밤 12시까지 일하는 점원도, 야밤에 오토바이 타고 음식을 배달하는 노동자도 어떤 소비자의 아들이나 딸이고, 친구이다.

그러나 노동자로서의 나는 소비자로서의 나에게 진다. 우리나라에 만연한 노동 비하 풍조와 허울뿐인 소비자주의 탓이다. 소비자 편익과 노동자 권익 간 갈등은 몇년 전 대형마트의 영업시간 논쟁에서도 일부 드러났지만, 24시간 음식배달 서비스업에서도 같은 논란의 소지가 있다. 물론 밤중에 싸게 야식을 배달해 주는 것도 소비자 편익을 위한 서비스이고, 영업의 자유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일부 직종 종사자가 다른 사람들의 사소한 편의를 위해 잠과 건강과 원만한 가정생활을 포기해야 하는 사회가 바람직한지도 따져봐야 한다. 선진국 대도시에서는 밤중에 배달은커녕 쇼핑하기조차 쉽지 않다. 대형마트와 도소매점 영업시간을 저녁 7∼8시로 제한하는 곳이 많기 때문이다. 그곳의 종업원이 관광객들의 눈에 당당하게 비치는 것도 그들이 손님과 동등한 노동자로서 대접을 받기 때문이다. 우리가 선진국이 되려면 조금 더 불편해져야 하고, 조금 더 비싼 서비스 요금을 감내해야 한다. 우리 안의 소비자와 노동자는 균형을 이뤄야 한다. 따라서 밥을 해 먹기 어렵거나, 싫을 때에는 먼 거리에서의 배달 서비스를 자제하고, 대신 걸어서 동네 음식점으로 외식하러 나가자. 조금의 불편을 기꺼이 감내하면 건강과 이웃 노동자들의 인권을 향상시키고, 플라스틱 쓰레기를 무더기로 줄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