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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켜줘서고마워

새롭게 태어나는 경주개동경이를 아시나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토종개 하면 먼저 진돗개를 떠올릴 것이다. 관심이 좀 있다면 삽살개나 풍산개도 꼽을 수 있겠다. 하지만 경주가 고향인 '동경이'는 이름부터가 좀 낯설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군이 전쟁에 쓸 모피를 얻기 위해 진돗개를 제외하고 우리나라 토종개를 대거 잡아들이면서, 과거에는 어디서나 볼 수 있던 우리나라 고유의 개들을 좀처럼 보기 어려워졌다. 다행히 민간에서 뜻을 모아 토종개보존회를 설립, 인공수정과 복제, 자연 번식 등의 노력으로 종 복원에 힘쓰고 있어 이들을 우리 가정에서 볼 날도 머지않아 보인다.
글. 김승희
경주개 동경이. 사진 출처 (사)한국경주개동경이보존협회
↑경주개 동경이. 사진 출처 (사)한국경주개동경이보존협회

가장 오랫동안 우리겨레와 함께 산 반려견

반가워. 나는 동경이라고 해. 이름 때문에 일본에서 왔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데 동경은 경주의 옛 이름이야. 아주아주 오랜 옛날부터 경주를 대표했던 동물이라고 해서 '동경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지. 얼마나 오래 전이냐 하면, 우리나라 문헌에 등장하는 개에 관한 기록 중 우리의 기록이 가장 오래됐을 걸. 문헌기록 말고도 5~6세기 신라 고분군에서 출토된 토우에도 꼬리 짧은 개 모양의 장식이 붙어 있는 걸 볼 수 있는데, 그 모델이 바로 이 몸이라는 말씀. 유물에도 우리 모습이 담겼을 만큼 신라시대 때에도 우리 조상은 인간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길러졌던 것 같아.

우리는 착하고 온순해서 사람을 보면 짖거나 경계하기보다 먼저 다가가 쓰다듬어달라고 재롱을 부리는 뛰어난 친화력을 지녔거든. 또 귀도 밝고 냄새도 잘 맡는데다가 영리하고 순발력에 점프력까지, 뭐 하나 빠지는 게 없으니 어딜 가든 인기 만점이었을 거야. 어떻게 유물 속 주인공이 동경이인 걸 확신할 수 있느냐고? 이 짧고 귀여운 꼬리를 잘 봐봐. 이렇게 짧은 강아지 꼬리는 본 적 없을 걸. 노루꼬리, 사슴꼬리랑 닮았다고 해서 19세기 이규경이라는 학자가 집필한 『오주연문장전산고』에는 우릴 '장자구(獐子狗) 또는 녹미구(鹿尾狗)라 불렀다'고도 기록해놓았어. 다른 강아지들처럼 긴 꼬리를 살랑살랑 흔드는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지만, 기분이 좋을 땐 아예 궁둥이를 이렇게 좌우로 흔들어서 더욱 귀여움을 받곤 하지.

울산 학성관 종루 앞에 꼬리 짧은 경주개 동경이 (서울대박물관 소장)
↑울산 학성관 종루 앞에 마지막으로 찍힌 경주개 동경이(서울대박물관 소장)
일제강점기 때 핍박받던 토종개들
그러고 보니, 꼬리가 짧다는 이유로 한때 '재수 없는 개'로 여겨지던 때도 있었구나. 일제강점기 일본군들이 못살게 군 건 비단 조선인만이 아니었어. 일본군의 방한복 제작에 동물의 털과 가죽이 필요했기 때문에 많은 토종개들도 수난을 겪었지. 1931년부터 만주사변까지 15년 가까이 잡아들였으니, 못해도 150만 마리 이상은 죽임을 당했을 거라고 해. 당시 일본과 조선은 한 몸이라고 주장한 '내선일체'의 근거를 뒷받침하기 위해 일본의 기슈견과 생김새가 비슷한 진돗개는 천연기념물로 지정해 보호하는 대신, 다른 토종개들은 대부분 군수물자에 이용됐어.

우리는 일본인들이 숭배하는 성스러운 개 형상의 석상인 '고마이누'를 닮았다는 이유로도 죽임을 당했지. 일본의 신성한 동물과 닮은 개가 식민지 국가에서 자주 눈에 띄는 게 그들 입장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판단했던 것 같아. 그래서 '기형이다' '재수 없다'는 이유를 붙여 학살하기도 했대. 1930년대 울산 학성관 종루 앞에서 찍힌 사진을 끝으로 우리는 경주에서 더 이상 볼 수 없는 개가 되었어.
사진 출처 : (사)한국경주개동경이보존협회
↑사진 출처 : (사)한국경주개동경이보존협회

그런 우리의 멸종 위기를 안타까워한 한 학자가 2006년부터 자료를 모으고 연구를 거듭한 결과 2009년에 (사)한국경주개동경이보존협회가 꾸려졌어. 이후 2012년 천연기념물 제540호에 우리 이름을 올릴 수 있었고, 현재는 협회와 100여 농가에서 400여 마리가 위탁 사육되고 있대. 우리 동경이들은 혈통관리시스템에 의해 완벽하게 관리되고 있고, 2014년에는 우리나라 최초로 동경이 복제 성공 소식도 들을 수 있었어. 민간의 이 같은 관심과 노력은 지역으로까지 확대돼서 지난해 12월 30일에는 경주개동경이보호육성 대행 용역 협약서 체결식도 열렸어. 앞으로 우리 동경이들을 경주시에서 체계적으로 관리하겠다고 약속한 거지. 경주시는 올해를 우리 동경이들의 '새로운 탄생의 해'로 선포하고, 지역을 넘어 대한민국의 대표 토종개로 지켜나갈 거라고 해. 대한민국 역사의 굴곡과 함께 사라질 뻔했던 우리 토종개들을 위해 애써줘서 정말 고마워. 다음에 우릴 만나면 반갑게 인사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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