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vironment 환경과 사람 1

Environment 환경과 사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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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번이 처음같이,

오늘도 소풍처럼
개그맨 윤택

이름대로 삶이 풀리는 사람이 있다. 그의 본명은 임윤택(林潤澤)이다. 다름 아닌 ‘숲’에서, 윤기있는 광택이 난다는 뜻이다.
시사·교양 프로그램 <나는 자연인이다>를 진행한 지 올해로 꼭 10년. 자연이라는 ‘교실’에서 자연인이라는 ‘철학자’를 만나면서,
그의 삶은 갈수록 그 빛을 더해간다. 자연을 향한 경외가, 사람에 대한 애정이, 나날이 더 깊어진다.
개그맨으로서의 전성기는 지났을지 몰라도, 인생의 황금기는 바로 지금이다.

글. 박미경 / 사진. 성민하

자유의 다른 말, 자연 그는 이미 안다. ‘진짜’ 좋은 것들은 대개 ‘공짜’라는 것을. 비 갠 뒤에 비쳐 드는 햇살 한 줌, 한여름에 불어오는 바람 한 줄기, 이른 봄에 만나지는 풀꽃 몇 송이…. 돈 한 푼 내지 않고 누리는 그것들이 우리를 얼마나 즐겁게 하는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알고 있다. 그 ‘앎’을 그는 도시의 삶에서도 틈틈이 누린다. 그의 자동차 열쇠고리는 버려진 관솔로 만든 것이다. 손가락 길이도 채 안 되는 나뭇조각이지만, 손으로 비비면 제법 진한 향기가 난다. 꽉 막힌 도로 위에 있어도 그의 마음이 자연에 가닿는 비결이다.

“<나는 자연인이다>로 만난 ‘형님’들이 자주 하시는 말씀이 있어요.
‘저~기부터 여기까지가 다 내 거야.’ 그게 결코 농담이 아니에요. 숲속의 정원도, 산속의 연못도, 그걸 누리는 사람의 것이니까요.”
자연이라는 세계에선 ‘액수’도 ‘평수’도 계산할 필요가 없다. 우리가 그토록 중요하게 여기는 ‘숫자’들이 문득 무용해지는 세상. 그 안에서 그가 느끼는 건 자유로움이다. 자연이 ‘자유’의 다른 말이라는 걸, <나는 자연인이다>를 통해 그는 톡톡히 배워왔다. 첫 방송이 2012년 8월이었으니, 우리가 그 프로그램을 접한 지 올해로 벌써 10년이다. 그해 그의 아들이 태어났다. 자신의 분신인 아들과 자기 생의 분신이 되어가는 프로그램을 함께 ‘키우면서’ 누구보다 그 자신이 성장해 왔다.

“이렇게 오래 하게 될 줄 몰랐어요. 20대 때부터 산을 좋아해 온 터라 흔쾌히 섭외에 응했지만, 막상 시작하니 이런 프로그램을 과연 누가 볼까 싶더라고요. 근데 너무들 좋아하셔서 깜짝 놀랐어요.

그 이유를 분석한 글을 언젠가 읽었는데, 휴일도 없이 일만 하며 살아온 어르신 세대에게 자연이 마음의 안식과 어린 날의 추억을 선사하기 때문이라더라고요. 그렇게 살고 싶지만 그럴 형편이 안 되는 어르신들이 <나는 자연인이다>를 보며 대리만족을 느끼신다는 거죠. 누군가의 고단한 인생을 어루만진다 생각하면 마음이 숙연해져요.” 적당한 때 그만두려던 생각을 접은 건 그 때문이다. 그토록 좋은 프로그램을 이토록 오래 하고 있다는 게 너무 황송해서, 자신을 필요로 하는 한 그는 계속 이 일을 해나가려 한다.

계절을 만끽하다, 지구를 염려하다 강산도 변한다는 그 10년간 그도 많이 달라졌다. 가장 큰 변화는 사계절의 흐름을 피부로 느낀다는 것. 이제 그에게 봄은 글자 그대로 ‘새봄’이다. 앙상한 겨울나무 가지 위로 연둣빛 새순이 돋아나는 때가 오면 그는 번번이 가슴이 뛴다. 꽃 필 때는 말할 것도 없다. 생강나무꽃을 시작으로 진달래며 산벚꽃이 차례로 피어날 때마다 처음처럼 설레고 들뜬다. 여름의 푸름도 가을의 붉음도 마찬가지다. 시시각각 달라지는 자연을 순간순간 즐기며 산다는 것. 그 행복이 자신의 것이라는 게 문득문득 감사하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생생히 느끼게 되면서, 지구의 환경을 저해하고 있는 것들에도 신경 쓰게 됐어요. 정말 속상한 건 10년 전의 산과 지금의 산이 너무 다르다는 거예요. 일단 실개천이 너무 말라가고 있어요. ‘형님, 여기 원래 물이 흘렀어요?’ 하고 여쭤보면 다들 그렇다고 말씀하세요. 그런 순간을 접할 때마다 우리가 자연에 무슨 짓을 한 건가 반성하게 돼요.”

그가 느낀 지구의 변화는 그것만이 아니다. <나는 자연인이다> 초창기엔 겨울마다 눈도 실컷 만나고 추위도 제대로 겪었다. 하지만 이젠 아니다. 흰 눈 덮인 산을 구경할 일이 별로 없는 데다, 두꺼운 옷을 여러 벌 끼어입는 날도 거의 없다. 봄가을도 갈수록 짧아진다. 기후변화가 심각하다는 걸 그는 몇 년 새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자연에 해를 끼치지 않으려고 지나치게 애쓰던 때가 있어요. 바로 그 지나침도 문제가 되더라고요. 산을 오르다 보면 다치지 않기 위해 나뭇가지를 잡게 될 때가 있는데, 그조차도 못 하겠는 거예요. 자연을 만날 수 없는 상태가 된 거죠. 그러다 깨달았어요. 아낀다는 이유로 피하는 건 자연을 향한 사랑이 아니라는 것을요. 그때부터 더 열심히 자연을 찾고 있어요. 자주 만나니 소중함이 더 커져요. 멀리 나가지 않아도 돼요. 나무와 벤치가 있는 소공원을 즐길 줄만 알아도 삶은 훨씬 풍요로워져요.”

“자연에 해를 끼치지 않으려고 지나치게 애쓰던 때가 있어요. 산을 오르다 보면 다치지 않기 위해 나뭇가지를 잡게될 때가 있는데, 그조차도 못 하겠는거예요.”

비움이 진정한 채움인 까닭 자주 만나는 정도가 아니다. 그에게 자연은 ‘일터’이자 ‘쉼터’다. 화·수·목요일에 <나는 자연인이다> 촬영을 마치고 집으로 오면 그는 금·토·일요일에 가족 캠핑을 떠난다. 자연에서 누린 기쁨을 사랑하는 이들과 나누기 위해서다. 5년 전부턴 경기도의 한 시골에 터를 마련해놓고 수시로 내려가 텃밭 농사를 짓는고 있다. 옥수수, 감자, 고추, 상추, 오이, 호박, 바질, 토마토…. 아들과 직접 길러 먹는 농작물이 그들의 밥상을 충만하게 한다. 가장 흐뭇한 건 그곳에 들여놓은 생태 화장실이다. <나는 자연인이다> 촬영 중 알게 된 화장실인데, 분뇨에 왕겨를 뿌리면 냄새가 전혀 안 난다. 텃밭 거름으로도 최고다. 아름다운‘재순환’이 그의 삶 속에 성큼 들어와 있다.

“내려놓는 법을 배우게 된 것도 제 인생의 큰 행운이에요. ‘자연인’ 중엔 자기만의 철학을 가지신 분이 많아요. 작은 움집 하나 지어놓고 사는 형님께 여기다 창고 하나 지으시면 어떻겠냐 여쭈니, 그걸 지으면 그 안에 뭔가를 자꾸 채우게 된다며 거부하시더라고요. 또 한 형님껜 집을 좀 예쁘게 꾸며 보시는 건 어떠냐고 했는데, 집을 별장처럼 해놓으면 누가 뭘 훔쳐 갈까 두려워 결국 CCTV를 달게 될 거라며 반대하셨어요. 그런 얘길 들을 때마다 ‘비움’이 진정한 ‘채움’이란 걸 깨닫게 돼요.”

지난 1월 시작한 새 프로그램도 공익과 예능 사이에 있다. 우리 땅 곳곳을 찾아가 1박 2일 동안 먹고 자고 일하면서, 그곳의 명물이며 특산물 등을 알리는 <자급자족원정대>. 그 프로그램을 촬영하면서도 환경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한다. 김포에서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물고기 잡는 모습을 촬영하던 날의 일이다. 어마어마한 양의 비닐이 낚싯대를 타고 줄줄이 올라왔다. 마음이 엄청나게 무거워졌다. 촬영을 마치고 돌아온 그는 비닐이나 플라스틱의 재활용률을 높이는 방법을 알고 싶어 관련 사업을 하는 이에게 그에 대해 진지하게 문의하기도 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게 뭐든 기꺼이 힘을 보태고 싶다.

“올해 만으로 쉰 살이 됐어요. 오십부턴 무슨 재미로 살까 싶었는데, 막상 돼보니 참 좋아요.”
그게 다 ‘자연’ 덕분이라고 한다. 번번이 처음같이, 오늘도 소풍처럼. 숲에서 윤이 나게 그의 삶이 흘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