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위기 시대에서 바다는 지구를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다.
연구선을 타고 대양을 관측하는 물리해양학자, 서울대학교 지구환경과학부 남성현 교수에게 해양의 역할에 대해 들었다.
글. 한율 사진. 오충근
기후 위기 시대에서 바다는 지구를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다.
연구선을 타고 대양을 관측하는 물리해양학자, 서울대학교 지구환경과학부 남성현 교수에게 해양의 역할에 대해 들었다.
글. 한율 사진. 오충근
해양과학은 지구를 이루는 여러 환경 가운데 바다를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저는 그중에서도 물리해양학을 연구합니다. 주로 연구선을 타고 태평양과 인도양 같은 대양 현장에 나가 해양 환경을 직접 측정하고 데이터를 수집한 뒤, 이를 분석해 해양 변화의 원리를 탐구하는 방식으로 연구를 진행합니다. 대표적인 예가 수온 관측입니다. 특정 위도와 경도, 그리고 수심에서 바닷물 온도를 반복적으로 측정하면 수온이 왜 오르고 내리는지, 또 어떤 물리적 과정이 작용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막연하게 바다를 좋아하기도 했고, 자연 현상의 원리를 탐구하는 데 관심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해양과학자를 꿈꿨던 것은 아닙니다. 대학에 진학해 자연 현상을 물리적으로 이해하고 해석하는 과정과 지구환경 분야에 흥미를 느꼈고, 전공을 고민하면서 자연스럽게 해양학을 선택했습니다. 특히 현장 탐사를 다녀오고 나니 제 적성을 더욱 분명히 알겠더군요. 연구선을 타고 직접 바다로 나가 관측하고 데이터를 얻는 모든 이 과정이 저와 잘 맞았고, 현장 관측 중심의 물리해양학 연구를 전문 분야로 삼게 됐습니다.
기후 문제를 이야기할 때 대부분 대기를 맨 먼저 떠올리지만, 실제로 지구 기후를 조절하는 데 해양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현재 지구에는 막대한 열에너지가 계속 축적되는 중입니다. 증가한 열의 90퍼센트 이상을
바다가 흡수하고요. 바다가 이처럼 많은 열을 흡수할 수 있는 이유는 바닷물이 기본적으로 차갑고, 열을 저장하는 능력이 매우 크기 때문입니다. 바다는 육지보다 표면적이 넓고 평균 수심도 깊습니다. 흡수한 열을 오랫동안
저장하는 특성 역시 가졌지요.
문제는 바다가 균일하게 따뜻해지진 않는다는 점입니다. 어떤 해역은 빠르게 가열되고, 어떤 곳은 온도가 상대적으로 느리게 변화합니다. 이러한 수온 변화의 차이는 해양 순환 자체를 바꿉니다. 이런 해양 순환의 변화는 전
지구적인 기후 패턴 변화를 만들어 냅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엘니뇨 현상입니다. 열대 태평양의 바닷물 온도 분포가 조금만 달라져도 전 세계 곳곳에서 폭우와 가뭄, 이상 고온 같은 기상 이변이 발생합니다. 그래서 미래
기후를 예측하는 모든 기후 모델에는 반드시 해양을 포함합니다. 앞으로 지구 평균기온이 얼마나 더 상승할지, 해수면 상승과 이상 기후가 어느 정도까지 이어질지는 해양이 어떻게 변화하는지에 달렸습니다. 바다를 이해하지
못하면 미래의 기후 역시 제대로 예측하거나 대응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바다는 지구에 축적되는 열을 흡수할 뿐 아니라 대기 중 이산화탄소도 상당 부분 빨아들입니다. 바다의 식물성 플랑크톤은 육상 식물처럼 광합성을 통해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만들지요. 우리가 호흡하는 산소의 절반 이상이 바다에서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식물성 플랑크톤이 대규모로 번성할 때는 그 범위가 한반도보다 훨씬 넓은 해역에 걸쳐 나타나기도 합니다. 지금도 바다 곳곳에서는 막대한 양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생성하는 과정을 반복적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바다 대부분은 우리가 직접 관찰할 수 없는 심해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특히 마리아나 해구처럼 수심 1만 미터가 넘는 심해는 인류가 접근하기 어려운 공간으로 손꼽죠. 해양 탐사에 난항을 겪는 가장 큰 이유는 압력 때문입니다. 우리가 지상에서 받는 압력은 1기압 정도지만, 바닷속은 10미터만 내려가도 압력이 1기압씩 증가합니다. 수백 기압을 견뎌야 하는 수심 수천 미터 지역은 인간과 장비 모두에게 극한의 환경입니다. 게다가 심해는 빛조차 도달하지 않는 완전한 암흑의 공간이며, 온도 역시 매우 낮습니다. 실제로 지구로부터 약 38만 킬로미터 떨어진 달에 다녀온 사람보다 수심 10킬로미터 아래 바닷속을 탐험한 사람이 훨씬 적습니다. 심해는 지금도, 여전히 인류에게 미지의 영역입니다.
남태평양 솔로몬 제도에서 있었던 일이 떠오르네요. 작은 섬 인근 해역에서 해양 관측 장비를 설치하던 중이었습니다. 날씨가 맑다가, 멀리서 짙은 구름대가 다가오는 것이 보였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바람이 거세지고 기온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바다가 순식간에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하필 장비 테스트 과정에서도 오류가 발생해 작업을 멈출지 계속 진행할지를 현장에서 긴박하게 판단해야 했습니다. 결국 위험하다 결론 내리고 모든 작업을 중단한 채 철수하기로 했습니다. 탐사 장비를 회수한 후 전속력을 내 항구로 복귀하는데, 폭풍우가 바로 뒤에서 따라붙더라고요. 거센 비바람을 뚫고 가까스로 항구에 도착해 확인해 보니 제가 머문 해역에서 태풍이 형성되던 상황이었습니다. 조금만 늦어도 매우 위험했을 뻔했죠. 현장 연구에는 늘 긴장감과 예기치 못한 변수가 존재합니다.
해양학자는 자연의 최전선에서 답을 찾아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장 관측이 중요한 이유는 해양 환경이 매 순간 다른 모습으로 존재하기 때문이에요. 누군가는 그 순간의 바다를 기록해야 합니다. 망망대해 한가운데에서 탐사대원들과 연구를 이어가는 과정은 일종의 탐험 같습니다. 아무도 가 보지 않은 현장에서 자연을 마주하고,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해양의 모습을 가장 먼저 눈으로 확인하는 경험은 제게 큰 희열이자 보람입니다.
오랜 기간 연구원으로 근무하면서 좋은 연구 성과를 내는 데 모든 에너지를 쏟았습니다. 현재는 교육자로서 관측 해양학 연구를 이을 후학을 양성하는 역할에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학생들이 관측 해양학 전문가로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에서 보람을 느껴요. 앞으로도 교육 현장에서 해양학자를 꿈꾸는 연구자를 기르는 데 이바지하고 싶습니다.
바다는 우리 삶과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특히 한국은 해상 교통에 크게 의존하는 만큼 바닷길이 막히면 경제와 산업 전반이 직접적인 영향을 받습니다. 꼭 과학이 아니더라도 바다를 이해하고 대비하는 일은 필요합니다. 아쉽게도 바다를 재난과 사고, 위험의 공간으로 인식하는 사람이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바다를 희망과 개척, 미래의 공간으로 여기는 시각이 강하지요. 바다를 보다 미래지향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면 어떨까요? 바다는 새로운 기회와 가능성이 잠재한 곳입니다. 바다를 제대로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나아갈 때 우리의 미래 경쟁력도 한층 강화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