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vironment 초록 공감 1

Environment 초록 공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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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방향으로
더 옳은 방식으로
타일러 라쉬
타일러는 ‘움직이는’ 사람이다.
해보고 싶은 일이나 옳다고 믿는 일이 생기면, 스스로 길을 내며 곧바로 발을 뗀다.
두 번째 인생은 없기 때문이다. 2016년부터 WWF(세계자연기금) 홍보대사로 활동해온 그는
2020년 <두 번째 지구는 없다>를 펴내면서 환경운동가의 길을 제대로 걷고 있다.
더 나은 방향으로, 더 옳은 방식으로.
지구를 위한 해법들을 자기답게 퍼뜨리면서, 자기 앞의 생을 자유롭게 헤쳐 나간다.
글. 박미경 / 사진. 웨이브 엔터테인먼트 제공
하루가 다르게 녹음이 짙어갑니다. 요즘 어떤 날들을 보내고 있나요?
매우 바쁘게 지내고 있어요. 방송과 강연 외에 책 작업도 하고 있어 하루가 금방 가요. 그래도 틈틈이 운동도 하고 반려견과 산책도 하면서 이 계절을 즐기려 노력해요. 냄새에 민감한 저는 계절마다 조금씩 다른 그 계절의 냄새를 알아요. 하지만 점점 기후가 바뀌면서 ‘뚜렷하다고 생각했던’ 사계절이 무너져가는 듯해요. 안타까운 일이에요.
자연스레 환경 이야기로 넘어갔네요. 타일러 씨를 환경운동가로 만든 최초의 씨앗은 무엇인가요?
미국 버몬트에서 자랐어요. 산이 아주 많고 인구가 매우 적은 곳이에요. 어린 시절을 함께한 버몬트의 숲이 저의 ‘기본 설정’을 만들어줬죠. 우리는 모두 자연 안에 있어요. 나, 우리 집, 직장, 사회라는 상자가 ‘자연’이라는 더 큰 상자 속에 있다는 걸 알면 환경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어요.
자연 속에서 자랐으니 자연의 경이로움을 느낀 적이 많았을 것 같아요.
가장 경이로웠던 건 고교 2학년 때 봤던 오로라예요. 저녁을 먹고 예술 활동을 마친 뒤 친구와 함께 기숙사로 돌아오던 길이었어요. 버몬트의 밤길은 평소에도 신비로워요. 보름달이 뜬 밤에는 불빛 없이도 온 세상이 환하고, 맑은 그믐밤에는 수없이 많은 별이 눈 내린 땅을 비추죠. 하지만 그날은 그것들과 확실히 달랐어요.
문득 올려다본 하늘이 온통 빨간색인 데다 가운데 번개 모양의 흰 줄이 있더라고요. 오로라였죠. 자연이 얼마나 위대한지, 인간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저절로 알게 되는 순간이었어요.
하와이와 더불어 미국에서 환경에 가장 민감한 지역이 버몬트라 들었어요.
버몬트는 단풍과 스키로 유명한 곳이에요. 주민들의 생계가 자연과 밀접해서 환경 관련 정책도 아주 많아요. 일회용 플라스틱이 금지되어 있고, 버몬트주에서 가장 큰 도시는 전기 생산을 100% 재생에너지로 만들어요. 건축 규제도 강력해요. 지역의 토지 용도를 정할 때 생태계의 역할까지 분석해서 관리하고, 이에 맞춰 주변 건축물의 크기나 하수시설 등을 관리하죠. 산림보호와 생물다양성 보호 정책도 많고, 환경 관련 교육을 워낙 많이 해서 주민들의 인식 수준도 상당히 높아요.
전문가의 책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두 번째 지구는 없다>는 친환경 콩기름 잉크와 FSC (Forest Stewardship Council) 인증 종이를 사용해 출판하셨어요. 하나의 ‘길’을 내신 셈인데, 그 과정이 궁금해요.
오래전부터 이런저런 출판 제안을 받아왔지만, 친환경 인쇄에 대한 의사를 밝히면 불가능하다는 답변이 돌아와 번번이 좌절됐어요. 어느 날 WWF라는 환경단체에 재생지와 식물성 잉크로 책을 찍어줄 수 있는 인쇄소가 한국에 있는지 문의해봤더니, 그런 데가 많다는 거예요. 알고 보니 국내 시장에서는 그에 관한 ‘인식’이 없다는 이유로 해외시장 용도로만 그렇게 출판하는 거였더라고요. 이후 제 생각에 동의하는 편집진을 만났고, 책 내용도 아예 기후 위기로 정했어요. 그 결과 대한민국 종합출판사 최초로, 100% FSC 인증 종이와 식물성 잉크로 인쇄된 도서를 내는 영광을 제가 누리게 됐죠.
책에서 ‘시스템적 사고’를 강조하셨어요. 우리가 어떤 시스템 속에 있는지 확인하고, 그 시스템이 지속 가능한 구조인가를 따질 수 있어야 한다고….
우리는 어릴 때부터 항상 눈앞에 문제를 혼자서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숙제를 혼자서 하고 시험을 혼자서 풀죠. 자라나면서도 마찬가지고요. 이렇게 문제를 접근하다 보니까 항상 도구와 수단만 찾게 되는 것 같아요. 환경문제 역시 개개인이 이렇게 접근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러나 환경 문제는 이렇게 하나의 도구로 해결될 수 있는 규모의 문제는 아니죠.
기후 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은 이산화탄소와 메탄가스 배출을 일으키는 화석연료 사용이에요. 그럼 다른 걸로 대체해야 하는데, 원자력이든 재생에너지든 당장은 대체하지 못해요. 그 소재를 공급하고 관리하고 처리하는 인프라, 규정, 기업생태계 등이 마련돼 있지 않으니까요.
환경 문제는 개개인의 실천도 중요하지만 전체적인 시스템이 어떻게 구축되어 있는지 잘 살펴보고 이를 변화하려는 노력을 사회 전체가 해야 하는 거죠.
해결책은 ‘분노’에 있다고 쓰신 것도 인상 깊었습니다. 무엇에 어떻게 분노해야 할까요?
정부와 기업, 교육기관 등에서 강조하는 실천은 대부분 ‘개인’에 한정돼 있어요. 정말로 시급한 것은 이산화탄소 배출을 적극 줄이면서 화석 연료를 다른 연료로 대체하는 ‘경제모델’을 전환하는 일인데, 그 일에 나서지는 않고 개인의 실천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처럼 호도하죠. 그 사실에 분노해야 합니다. 환경을 파괴하는 기업의 제품을 불매하고, 환경 문제를 인식하지 않는 정치인을 뽑지 않고, 기후 위기 문제를 해결할 새로운 제도나 도구를 만들어 달라고 우리가 먼저 요구해야 해요.
2016년부터 WWF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계세요. 어떤 단체인가요?
WWF는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자연 보전 단체예요. 해양과 기후, 에너지, 담수, 야생동물, 식량 등 자연 보전 전 영역에 걸쳐 활동하죠. 기업들이 지속 가능한 경제모델로 전환할 수 있도록 관련 정보나 컨설팅도 제공해요. 중국 판다보호구역이나 태국 왕립코끼리공원 같은 생태보호구역을 직접 운영해, 멸종위기종의 서식지를 보호하고 탄소흡수원도 확보합니다.
홍보대사로 활동하면서 삶에 많은 변화가 생겼을 것 같아요.
WWF 덕분에 ‘시스템적’ 관점이 생겼어요. 전문가들도 많이 만나고 생태보호구역도 방문하면서, 제가 얻은 지식과 경험을 더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어졌죠. 기후 위기 문제를 해결하는 꿈도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생겼어요.
기후 위기 해결에 ‘꿈’이라는 표현을 쓰시는 게 인상적이에요.
현실이 아니라서, 이루기 힘들어서 꿈이잖아요. 문제 해결에 기여하고 싶다고만 생각하다가, 강연 질의응답 시간에 한 청년이 저에게 ‘꿈을 자주 바꿨다고 하는데 지금 꿈은 뭐냐’고 묻더라고요. 그때 떠오른 게 환경 문제였어요. 이 세상에서 제가 가장 바꾸고 싶은 것, 제가 매일 걱정하는 것, 그게 기후 위기 문제니까요. 그때부터 ‘진로’가 아닌 ‘바람’을 꿈으로 말하게 됐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