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al 녹색 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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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호의 미래,
우리 모두의 미래
여름이면 수많은 이들이 에메랄드빛 바다를 즐기러 해외로 떠난다.
형형색색 산호초와 화려한 물고기 떼.
이런 바닷속 풍경은 몇 시간씩 비행기를 타고 가야만 볼 수 있는 이국적인 장소로 여겨지곤 하지만
사실 우리는 생각보다 가까이에서 그에 못지않은 바다를 만날 수 있다.
바로 제주다.
글. 국민일보 박상은 기자
바다 수온 상승으로
위협받는 산호초
서귀포 앞바다는 국내의 대표적인 스쿠버다이빙 포인트다. 특히 문섬과 범섬 인근 해역에는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문 연산호(Soft Coral) 군락지가 형성돼 있다. 연산호는 딱딱하지 않고 부드러운 줄기 구조를 가진 산호를 말한다. 연산호 군락지는 꽃송이가 한가득 피어 있는 아름다운 정원을 연상케 해 다이버들 사이에서 ‘산호 정원’으로 불린다. 야생군락지로서 학술 가치도 매우 높아 정부는 서귀포와 송악산 해역 일대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해 관리 중이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 연산호 군락지에서 심상치 않은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아열대 지역에서 사는 경산호(Hard Coral) 종이 연산호 군락지를 침범하며 서식지를 넓히는 모습이 확인된 것이다. 난대성 생물인 담홍말미잘이 멸종위기 산호인 ‘해송’의 줄기 등에 붙어서 해송이 집단 폐사하는 일도 벌어졌다.
정기적으로 제주 산호초를 모니터링 하고 있는 녹색연합은 지구온난화로 인한 수온 상승을 원인으로 꼽고 있다. 녹색연합에 따르면 지난해 제주도의 표층 수온은 마라도(8월 7일)와 서귀포(8월 15일)에서 30℃까지 올랐다. 2022년 8월 평균 수온은 제주시 용담 28.9℃, 조천읍 김녕 28.2℃, 성산읍 신산 27.5℃, 서귀포 중문 26.6℃, 대정읍 가파도 28.1℃, 한림읍 협재 28.4℃ 등이다. 2010년 전후 주요 측정지점의 8월 평균 수온이 24℃ 전후였음을 감안하면 급격한 변화다.
기후위기에 취약한 산호
산호가 식물이 아닌 동물이라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산호는 말미잘 같은 아주 작은 ‘폴립(Polyp)’이 모여 있는 형태다. 촉수를 이용해 지나가는 먹이를 사냥하거나 동물성 플랑크톤을 섭취한다. 1년에 1cm 내외로 느리게 자라면서 수천 년을 살아가기도 하지만 환경 변화에 민감해 기후위기에 가장 취약한 동물 중 하나다.
제주에서 나타난 현상은 전 세계 바다에서 벌어지는 기후위기의 단면일 뿐이다. 20~28℃에서 생존하는 산호는 수온이 조금만 높아져도 ‘폴립’에 품고 있던 미세조류를 방출하며 하얀 석회질을 드러낸다. 일명 ‘산호 백화현상(Coral Bleaching)’이다. 산호의 색깔을 결정하는 미세조류는 광합성을 하며 산호에게 부족한 영양분을 보충한다. 산호는 백화현상이 일어나더라도 새로운 미세조류를 받아들이며 스스로 회복할 수 있지만, 고온에 장기간 노출되면 끝내 사멸하고 만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2018년 보고서에서 지구 온도가 1.5℃ 상승하면 전 세계 산호초의 70~90%가 사라질 것이며, 2도까지 상승하면 산호의 99%가 죽는다는 암울한 전망을 내놨다. IPCC가 올해 발표한 6차 종합보고서에서 2040년 안에 1.5℃ 상승은 불가피하다고 결론 내린 만큼, 지금과 같은 산호를 볼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다. 세계 최대 산호초 지대인 호주 동북부 해안의 ‘그레이트배리어 리프(Great Barrier Reef)’는 벌써 6번째 대규모 백화현상을 겪었고 그 주기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
물론 일부 산호는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해 서식지를 옮기거나 높은 수온을 견디는 힘을 키울 수도 있다. 그러나 평년보다 극단적으로 해수 온도가 높아지는 ‘바다 폭염’의 빈도가 잦아지면 저항력이 높은 산호들도 버틸 수 없을 거라는 게 과학자들의 분석이다. 바다가 흡수하는 이산화탄소량이 많아져 ‘해양 산성화’가 진행될수록 산호나 조개 같은 해양생물이 단단한 골격과 껍질을 만들기 어려워진다는 점도 문제다.
우리의 미래를 위해
산호를 지키자
산호는 육지의 열대우림에 비유될 정도로 해양 생태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광합성을 통해 이산화탄소를 산소로 바꾸고, 해양 생물의 서식지와 은신처가 되어준다. 인간에게 산호는 먼 바다에서 밀려오는 파도로부터 해안선을 보호하는 방파제 기능을 하며 동시에 관광과 어업 등에 따른 경제적 가치도 제공한다. 산호가 사라진다는 의미는 단순히 하나의 종이 멸종하는 것이 아니라 해양 생태계의 붕괴나 마찬가지다. 그 영향에서 인간 역시 자유로울 수 없다.
바다는 지구 표면의 70%를 뒤덮고 있다. 달리 말해 우리가 생활하는 육지는 지구의 30%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의 터전을 거대한 바다가 품어주고 있는 셈이다. 바다 속 세상은 눈에 보이지 않기에 더욱 무심하기 쉽지만, 우리 역시 자연의 일부이며 바다와 공생하고 있다. 산호를 지키는 일이 결국 우리의 미래를 지키는 일과 다름없는 이유다.